한국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 아홉 번째 소설 『뱀과 물』은 배수아의 어린 시절(소녀 시절)로 독자를 이끈다. 작품 속 어린 시절은 ‘비밀스러운 결속’(38쪽)과 환상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여리고 순수한 것과는 동떨어진 일들. 부모의 부재, 그들을 찾아 떠나는 길, 무거운 가방, 눈이 내리거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들. 일곱 살이 되면 더는 남자아이 행세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소중한 존재를 지킬 힘이 여전히 나에게는 없다. 그리고 죽음에 눈을 뜬다. 그러므로 무구한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뒤 혼탁해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 아련한 마음으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는 것은 망상에 다름없다는 것. 그 망상 속 어린아이는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일 뿐이다.